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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박창근 2집,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차우진_대중음악평론가] 노래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취미든 직업이든 우리에게 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노래를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게다가 노래/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입장으로서 종종 하게 되는 생각이다. 배우고 익힌 대로 말하자면 노래는 곧 삶이다. 유행가에 항상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이별하고 슬퍼하는 것도 우리 삶이고 하다 못해 팥빙수에 대해 예찬을 쏟아내는 것도, 휴양지에서 만난 멋진 이성에게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는 것도, 댄스 클럽에서 밤새 몸을 부대끼며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도 우리 삶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것도 우리 삶의 이야기이고, 중년의 애틋한 사랑이나 가족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도 모두 우리 삶이다. 그래, 노래는 곧 삶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노래에 대해서 하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노래(의 의미)에 대해서 오해하곤 한다. 거대한 세계관과 거창한 담론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는 종종 작가주의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창작자를 작가로, 그러니까 범인과는 다른 세계의 위치로 옮겨놓곤 한다. 그러나 작가는, 단지 번역자일 뿐이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작은' 기호들, 신호들, 냄새들, 풍경들을 잡아내어 우리의 언어로 들려주는 것이 바로 작가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창근의 두 번째 음반은 기분 좋은 발견이다. 익숙한 사운드를 때깔나게 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은 노래의 소중함을 새삼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부연하자면 박창근은 1993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영남 지역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해오다가 1997년 즈음 솔로 데뷔 음반을 발표했고 이후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가객이라는 보컬 그룹에서 활동했다. 가객은 천지인, 유정고 밴드 등과 더불어 노래 운동 진영의 대표적인 그룹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이후 박창근은 다시 솔로로 독립해서 대구를 거점으로 전국을 무대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주로 현실에 대해서 노래한다. 그의 인생을 노래의 길로 틀게 만든 계기가 1991년 신입생 시절, 독문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틀어준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점은 그의 노래 이력이 민중가요의 스펙트럼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지만, 산울림의 ‘너의 의미’가 그의 10대를 저의하고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 이십대의 열정을 부추겼다는 점은 그의 노래가 여느 민중가요들과는 조금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세련되고 다채롭다. 첫 곡 ‘주라’는 전기 기타의 거친 톤을 배경으로 훵키한 그루브를 만들어 내고, ‘이런 생각 한 번 어때요?’는 어쿠스틱 기타의 셔플 리듬에 하모니카와 퍼커션으로 악센트를 주는 흥겨운 곡이다. ‘고뇌로우니까’, ‘이유 두 번째 이야기’등은 익숙한 포크 스타일의 서정적인 곡이고, ‘바람’은 (소위) 록킹한 스타일의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이다.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의 발라드 ‘그래 주길 바랠 뿐이야’, ‘잊진 말아줘’, 그리고 ‘비가 오면’ 등이 쉼표처럼 자리잡은 뒤엔, 사뭇 비장한 어조의 ‘저주’, 풍자적인 ‘귀기울여 보게’가 등장한다. 비장함과 풍자극을 지나면 건강한 사랑 노래들이 등장하는데 ‘어느 목석의 사랑’은 김광석이 연상되는 모던-포크 송이고, ‘오월의 신부’는 다소 식상하지만 낭만적인 소네트, 짧은 사랑 고백이다. 앨범의 말미에 위치한 ‘나 그대와 함께 살겠네’와 ‘거세당한 고양이’도 이런 감수성의 연장이다. 무엇보다 박창근이 만드는 사운드가 포크를 기반으로 록과 훵크(funk) 스타일을 다채롭게 사용하고 있고, 그것이 중성적인 그의 목소리와 어울려 세련되면서도 진지하게 들린다는 점은 이 노래들이 보다 넓은 시장에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특히 그의 노래에 담긴 이야기들, 메시지들이 환경과 생태주의, 평화와 공존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은 박창근의 노래가 스타일과 의미 양쪽 모두를 대안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적확하게 환경운동과 생태주의가 반폭력/반자본과 함께 어떻게 평화로 이어지는가를 노래로 들려준다. '주어진 만큼만 누리'고, '허락된 만큼의 욕망'에 충실한 것. 우리 삶은 때론 심각하고 때론 허무하여 때론 추억에 기대겠지만, 기어이 같은 생각으로 함께 살아갈 배우자를 찾고 친구들을 만들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우리가 아직 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것이 바로 박창근이 노래하는 인간의 삶이다. 그는 세계를 구성하는 작은 신호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더듬이를 가진 베짱이기도 하다. 그는 그 더듬이로 공사 현장에서 뽑혀나간 들꽃들과 파헤쳐진 산천을, 거대한 공장 같은 사육장에서 잔혹하게 도살되는 가축들과 자신이 거세시킨 고양이에 대해, 그리고 인간을 비롯해서 그 모든 아픈 영혼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해 노래한다. 그래서 그는 제법 괜찮은 베짱이다. 그런 베짱이들이 개인을 구원하고 게다가 세상도 구원한다. 박창근 2집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동물해방을 노래하는 가수 박창근’ 김재호 (yital@hanmail.net) 한참이나 기다렸던 박창근의 두 번째 음반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이란 제목의 이번 음반은 사전예약자들에게 드디어(?) 배달되었고, 앞으로 인디레이블과 홈페이지(http://www.artmusician.com/)를 통해서 판매된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는 듯 이번 음반은 풍성하고 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1999년 ‘Anti Mythos’라는 제목으로 첫 독집음반을 내놓았고, 2002년 밴드 ‘가객’을 결성해 [아야(?也)]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선보인 가수 박창근. 그는 대구지역에서 오랫동안 거리공연을 통해 결식아동을 도와 왔고, 노동 현장 등 사회참여 공연도 꾸준히 해온 중견급 가수이다. 탁월한 목소리를 가진 박창근은 이번 음반에서 ‘어느 목석의 사랑’의 가사를 빼고 모든 노래를 작사, 작곡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 총15곡이 담긴 이번 음반의 주제는 모든 생명과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창근은 ‘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에서 “오늘도 그대는 남의 살을 몇 점이나 삼키셨나요?”라며 육식에 대해서 질타한다. 중국고대문헌에서 인용했다는 ‘귀 기울여 보게’에서는 “이 세상에 군대와 사람들의 재앙이 왜 있는지 알고 싶거든 깊은 밤 도살장에서 들려오는 가여운 비명소리에 귀 기울여 보게”라고 충고한다. 점점 탐욕스러워지는 인간을 향하여 박창근은 ‘저주’를 퍼붓는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노래들은 자주 접할 수 있었지만, ‘동물해방’을 구체적으로 외치는 노래는 박창근이 아마 처음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의 노래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노예해방, 여성해방에 이어 ‘동물해방’의 절실함을 그의 노래를 통해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피터싱어가 비판했듯이, 만약 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면 동등한 배려를 해야할 필요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타이틀 곡 ‘주라’와 ‘이유 두 번째 이야기’는 내 주위의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의미를 발견하게끔 해준다. 그리고 ‘비가 오면’, ‘그래 주길 바랠 뿐이야’ 등은 옛 사랑에 대한 추억을 더듬게 해준다. 특히 이 두 노래는 박창근의 목소리가 구슬프게 녹아 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에는 근원적인 슬픔이 베어 있는 것 같다. 박창근이 에필로그에서 지적했듯이, 생각과 음식은 꼭 가려서 접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공해 속에, 장사치들의 비도덕적인 음식가공 속에 우리는 쉽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던 간디의 말이 박창근의 노래와 더불어 절실히 다가온다.